브레히트는 뮌헨 캄머슈필레 극장의 희곡 전문가가 된다. 그는 성악가 마리아네 초프와 결혼하며 이들 사이에서 딸 하네가 태어난다. 이렇게 그의 희곡이 공연되기 시작하며 그는 점차 희곡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결국 1924년 연극을 비롯한 문화 활동이 활발했던 베를린으로 이주한다.
재판 장면이다. 이것이 대표적으로 쓰이는 것은 <코카서스의 백묵원>과 <사천의 선인>이다. 재판장면은 소송당사자와 이를 참관하는 방청객이 있음으로 극중극에서의 연극과 관객이라는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낸다. 특히, <코카서스의 백묵원>의 경우는 전체작품이 극중극의 형식을 띠고
서사극 이론’은 현대 연극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. 그 중 서사극 연기는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와 함께 현대의 연기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. 그런데 학생으로서 브레히트작품을 할 때나 그의 이론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의 연기론으로 배우들과 작품을 올릴 수 있을까? 하는 점이다.
작품은 《서푼짜리 오페라(1928)》 《마하고니시(市)의 흥망(1929)》이다. 이 두 작품은 K. 바일이 곡을 붙여 성공한 음악극인데, 브레히트의 서사극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뜻깊다.
감정이입을 중심으로 한 <연극의 희곡적 형식>에 <연극의 서사시적 형식>을 대치시킨 브레히트의 시도가 작품